IZE – 종편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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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였던가. 수원에 살 적에 동네에 있는 헬스장으로 운동을 갔을 때였다. 런닝머신에는 개개인이 볼 수 있는 TV가 설치되어 있었고,  역기가 놓인 곳에는 커다란 TV가 하나 놓여있었다. 아파트 단지안에 위치해있어서 그런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어르신들은 커다란 TV앞에 모여서 무언가를 보고 계셨다. TV조선이었다. 호기심에 다가가 본 프로그램은 충격 그 자체였다. 사사로운 대화의 형식을 빌려서 가장 ‘핫’한 시사이슈를 다루고 있었는데, 근거는 전혀 없었고 ‘카더라.’, ‘ 뭐, 아님 말고.’ 라는 논조들을 방패삼아 할 말, 할 수 없을 말들을 가리지 않고 수도 없이 뱉어내고 있었다. 채널의 이름을 빌려서 점을 치고 예언을 하고 있었다.

내가 더 충격을 받았던 점은 그 말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자세였다. 단지 TV조선이라는 이유로, 채널A라는 이유로, 그들이 평소에 가정으로만 믿고 있었던 혹은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방송에서 그대로 해주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정들은 기정사실화되고 깨지지 않을 것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유없이 모든 것들을 행했다. 특정 인물들이 사탄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악인들이 천사의 날개를 얻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편협해진다는것은 이리도 편하고 쉬운 일이었다.

시청률을 쟁취하기위한 선정성이라는 말로는 용납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하는 행동들은 정말 ‘웬만해서는 막을 수 없다.’

 

매거진 IZE에서 발행된 세 개의 기사들. 종편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대부분의 진실들은 처음엔 우리를 화나게 하고 불편하게 할 것이다. 알기 싫다고 할지도 모른다. 모르기 전에도 별 일없이 잘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그게 능사는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나아질 가능성조차도 너무나 익숙하게 줄어들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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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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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 하늘의 구름은
겨울날의 산맥처럼 보였다.

그 사이로 보이는 저 하늘을
가리고 있는 깎아내릴듯한 험준한 봉우리들.

순간,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지상이
깊은 바다가 되었다.

두 어깨에 힘이 쭉 빠지면서
닿을 때까지 깊이 가라앉는 닻이 된 듯 했다.
이상한 느낌.

단단한 땅 위에 서있지만
한없이 작아지고
알 수 없는 깊이로 향하는
끝없는 침강.

주말에 할 것도 없고 그냥 있어야지

아무래도 바쁘지 않으면 이상하더라고

바람이 파도가 되고
견디지 못한 이들은 난파되는 세상에

어디에서 어디로 가서
어떤 의미가 되기를 원하는 걸까?

이 바닥의 끝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강하다는 것

인생은 아름다워

시련과 고통에 강하다는 건 무엇인가.

단단하다는 것인가,

잘 견딘다는 것인가.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간 귀도를 다시 만났다.

태연하게 자신을 왕자라 칭하고

하늘에서 떨어진, 한 눈에 반한

여자를 공주님으로 부르고

공주님으로 만들어버리는 그에게서

강한 무언가를 느꼈다.

 

 

자기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그 누구와 사랑을 할까.

 

사랑에 대한 흔들림이 있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도라와 귀도,

그들의 사랑스러운 자식.

미쳐돌아가던 세상.

 

안녕하세요, 공주님.  어제 밤새도록 그대 꿈을 꾸었다오.

 

그 말은,

그 말을 하게 한 귀도의 사랑은

잠시나마 수용소를 궁전으로 만들었었다.

 

 

귀도는 그 어떤 인물들보다도 강했다.

 

나이가 더 들고난 뒤에 다시 만난 귀도에게서

난 되려 ‘강함’을 목격했다.

노랫말

나이를 먹어가고
예전과는 다른 일들을 겪으며
경험이라는 것이 많아지면서

소위 ‘확장’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은
나에겐 다름이 아니라
바닥까지 공감하게 되는
노랫말들이 많아질 때에 그렇다.

그러니까
‘저런 노랫말이 말이 된다.’
가 아니라
‘저건 내 이야기가 될 말이었구나.’
하는 것.

그게 좋은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슬프고 비참한 이야기일수도 있다.

그렇다해도 어떤가?
그렇게 노래는 우리에게 오는 것이니.

대화 1

“너를 쭉 보다 느낀 점이 있는데, 넌 너무 너 자신을 변호하지를 않는 것 같아.”

“무슨 의미에요?”

“무언가에 대해서 지적하면 그래도 너가 열심히 한 것들에 대해서 피력할 법도 한데 그런건 하나도 없잖아. 아예 아무것도 안 한것도 아닌데 ‘네,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말야.”

“그래도 제가 부족하니까 그런 말을 들은 거 잖아요? 거기서 되받아서 말하는게 맞는 것도 아닐테고…”

“지적을 받아들이는 건 좋지만 넌 지적하는 상대를 너무 배려해. 솔직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되려 준단 말야. 난 사람이 좀 기분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는데 넌 그게 전혀 아닌거 잖아?”

“…..”

“그러니까 음… 넌 좀 너 자신을 용서할 필요가 있어.”

“조금씩 어려워지는데요. 너 자신을 사랑하라 그런 건가요?”

“글쎄… 그건 사실 나도 잘 못하니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저는 그게 진짜 안 되더라고요. 이런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도 참 없는데, 어떻게 제가 좋아하라는 건지…”

“그래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노래가 나온 건지도 몰라. 그렇게나 어려운 거니까 각인시키려고…”

“종교가 힘있는 이유가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요. 왜 기독교에서는 Jesus Loves You라고 하잖아요. 너가 어떻더라도 하나님은 널 사랑하신단다 이러고…”

“어쨋든 너를 가장 아껴줄 수 있는 사람은 너 자신뿐이라는거야. 물론 너보다 더 너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는 있지만 그것도 한 때이거나 항상 그렇지는 않아.”

“그건 맞는 것 같은데 그래도…”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별로 끌어오고 싶지 않네. 어쨋든 넌 좀 더 너 자신을 용서하고, 인정하고, 보호해줘야 해. 사실 그래야 좀 지적하거나 이야기할 맛도 나는거지. 한 쪽이 픽 죽어버리면 다른 쪽도 힘이 빠져버리는 법이야.”

“윤종신의 ‘나이’라는 노래를 듣다 보면 ‘날 사랑해. 난 아직도 사랑받을 만해.’, ‘날 사랑해 날 용서해 지금부터.’ 이런 가사가 나와요. 그걸 듣다보면 감동은 받아도 공감은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게 어떤 느낌일지 잘 모르겠어요.”

“솔직해져야해. 어떤 감정의 상태는 있는 그대로 직면해야지만 다음 단계로 발전해 나갈 수가 있어. 다른 사람을 너보다 더 배려할 필요는 없어. 계속 이러다보면 너의 안은 텅 비어버리고 밖은 너무 가득 차버려서 어지럽혀지고 말 꺼야.”

“…..”

“지금보다 훨씬.더 너 자신을 아끼고, 자랑스럽게 보고, 변호하고, 인정하고 용서해줘. 그렇게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나 편하자고

어떤 것이든지
정의를 해야만
속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 음식은
어떤 맛의 정의를 가졌고,

이 날씨는
어떤 느낌인거고,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정의한다는 것의 함정은
그 틀을 벗어나는 순간
모든 것이 엉망이 되버리도록
만든다는 것 같다.

관계 또한 그렇다.

둘의 사이를
무언가로 규정하는 순간
마음은 위험해진다.

나도,
그런 사람들중에 하나였었다.

그래서
그렇게
수많은 시간들을
살아보지 못한 것이 좋았을 때로
망쳐버렸었나보다.

복잡한 것이 싫다는 핑계로
난 너무 게을렀던 것이 아니었을까.

거리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물리적인 거리도 있고
심리적인 거리도 있단다.

물리적인 거리는 제쳐두고
심리적인 거리를 보았을 때에,

이를 잘 지키는 사람이
건강한 마음을 가진다고 한다.

동료나 아는 사람 정도가 하는 말을
너무 가깝게 듣거나

실제로는 가깝지도 않은데
가까운 걸로 착각해서
상처를 입기도 한다.

이 거리가 행동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행동이 거리를 만들기도 한다고도 들었다.

아는 사람을 대하듯이 대하다 보면
어느새 그 정도로 거리가 형성되고
가족이나 사랑하는 이를 대하듯이 한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거리를 벌리는 데에는 슬픔이,
좁히는 데에는 아픔이 뒤따른다고도 했다.

정말 한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도 싶다면
그 아픔을 기꺼이 감당하고서
마음을 쏟아붓는 것.

그것이 어찌보면
사랑이라는 말로
대화는 일단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