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생각, 생각과 글.

생각에서 글이 출발하는가,

글에서 생각이 출발하는 것인가.

 

생각에 관하여 글을 쓰기도 하고

생각에서 비롯되어 글을 쓰기도 한다.

혹은, 생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글에서 생각이 탄생하기도 하고

글을 쓰면서 생각이 펼쳐지기도 하고

글로 인해서 생각이 멈추기도 한다.

 

글과 생각,

생각과 글.

 

혹은 언어와 생각.

 

이 둘의 선후관계를 파악한다는건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먼저 멈추기 시작한다면

그 두가지 모두가 흔적만 남을 것이라는 것은

확실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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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오늘은 꼭 이런 주제로 글을 써야지.

써야지, 써야지, 써야지 …

하다가 결국엔 아무런 글로 쓰지 못했다.

 

‘하루에 이런 일들이 있었으니,

이것에 대해서 소소하게 써봐도 재미있겠다.’

하면서 메모를 해놓고서는

당시에는 굉장히 타당하다고 생각했던 핑계들로 책상 구석에 밀어 놓고서는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말이 안되는 변명들로 인해 잊혀진 글들이

혹은 글로 쓰여질 수 있었던 수기들이 수두룩하게 쌓여버렸다.

그것들을 수습하여 다시 써보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버린 뒤에는 전혀 정렬과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순간들이 쓰레기통으로 빨려 들어가버렸다.

놓쳐버린것이다.

 

벼락치기

일을 미루는 거는요,

일을 너무 잘하려는

욕구 때문인 거에요.

완벽주의 때문에 그래요.

 

성장문답 중 윤대현 교수님 편에서 나온 말이다.

처음 봤을 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이해가 되었다.

나는 완벽한 글을 쓰고자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글을 쓰고 올리면

‘이게 혹시 나쁜 글이면 어떡하지?’

‘더 완벽하고 빈틈이 없는 글을 써내려갈 수 있어야 할텐데…’

하며 쓰고자 하는 글들은 쓰지도 못한 채로

불안해하고만 있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그러게…

그러게 말이다.

 

그 완벽에 대한 강박때문에

글쓰기를 미루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IZE – 종편의 창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5120609597254327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5120609597267897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5120609587214136

 

언젠가였던가. 수원에 살 적에 동네에 있는 헬스장으로 운동을 갔을 때였다. 런닝머신에는 개개인이 볼 수 있는 TV가 설치되어 있었고,  역기가 놓인 곳에는 커다란 TV가 하나 놓여있었다. 아파트 단지안에 위치해있어서 그런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어르신들은 커다란 TV앞에 모여서 무언가를 보고 계셨다. TV조선이었다. 호기심에 다가가 본 프로그램은 충격 그 자체였다. 사사로운 대화의 형식을 빌려서 가장 ‘핫’한 시사이슈를 다루고 있었는데, 근거는 전혀 없었고 ‘카더라.’, ‘ 뭐, 아님 말고.’ 라는 논조들을 방패삼아 할 말, 할 수 없을 말들을 가리지 않고 수도 없이 뱉어내고 있었다. 채널의 이름을 빌려서 점을 치고 예언을 하고 있었다.

내가 더 충격을 받았던 점은 그 말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자세였다. 단지 TV조선이라는 이유로, 채널A라는 이유로, 그들이 평소에 가정으로만 믿고 있었던 혹은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방송에서 그대로 해주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정들은 기정사실화되고 깨지지 않을 것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유없이 모든 것들을 행했다. 특정 인물들이 사탄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악인들이 천사의 날개를 얻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편협해진다는것은 이리도 편하고 쉬운 일이었다.

시청률을 쟁취하기위한 선정성이라는 말로는 용납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하는 행동들은 정말 ‘웬만해서는 막을 수 없다.’

 

매거진 IZE에서 발행된 세 개의 기사들. 종편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대부분의 진실들은 처음엔 우리를 화나게 하고 불편하게 할 것이다. 알기 싫다고 할지도 모른다. 모르기 전에도 별 일없이 잘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그게 능사는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나아질 가능성조차도 너무나 익숙하게 줄어들 것이니까 말이다.

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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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 하늘의 구름은
겨울날의 산맥처럼 보였다.

그 사이로 보이는 저 하늘을
가리고 있는 깎아내릴듯한 험준한 봉우리들.

순간,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지상이
깊은 바다가 되었다.

두 어깨에 힘이 쭉 빠지면서
닿을 때까지 깊이 가라앉는 닻이 된 듯 했다.
이상한 느낌.

단단한 땅 위에 서있지만
한없이 작아지고
알 수 없는 깊이로 향하는
끝없는 침강.

주말에 할 것도 없고 그냥 있어야지

아무래도 바쁘지 않으면 이상하더라고

바람이 파도가 되고
견디지 못한 이들은 난파되는 세상에

어디에서 어디로 가서
어떤 의미가 되기를 원하는 걸까?

이 바닥의 끝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강하다는 것

인생은 아름다워

시련과 고통에 강하다는 건 무엇인가.

단단하다는 것인가,

잘 견딘다는 것인가.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간 귀도를 다시 만났다.

태연하게 자신을 왕자라 칭하고

하늘에서 떨어진, 한 눈에 반한

여자를 공주님으로 부르고

공주님으로 만들어버리는 그에게서

강한 무언가를 느꼈다.

 

 

자기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그 누구와 사랑을 할까.

 

사랑에 대한 흔들림이 있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도라와 귀도,

그들의 사랑스러운 자식.

미쳐돌아가던 세상.

 

안녕하세요, 공주님.  어제 밤새도록 그대 꿈을 꾸었다오.

 

그 말은,

그 말을 하게 한 귀도의 사랑은

잠시나마 수용소를 궁전으로 만들었었다.

 

 

귀도는 그 어떤 인물들보다도 강했다.

 

나이가 더 들고난 뒤에 다시 만난 귀도에게서

난 되려 ‘강함’을 목격했다.

노랫말

나이를 먹어가고
예전과는 다른 일들을 겪으며
경험이라는 것이 많아지면서

소위 ‘확장’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은
나에겐 다름이 아니라
바닥까지 공감하게 되는
노랫말들이 많아질 때에 그렇다.

그러니까
‘저런 노랫말이 말이 된다.’
가 아니라
‘저건 내 이야기가 될 말이었구나.’
하는 것.

그게 좋은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슬프고 비참한 이야기일수도 있다.

그렇다해도 어떤가?
그렇게 노래는 우리에게 오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