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 감상문 : [매드맥스] 미쳐버린 세상에서는 정신줄을 잡아야 산다.

이 글은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에 대한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 (뒤늦게) 들어가면서…

매드 맥스는 근래에 들어 본 영화중에서 가장 무식한 듯 빈틈없이 본 영화다. ‘오리지널 시리즈 조지 밀러 감독’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보지 않는다면 매드 맥스가 본래 ‘시리즈물’이었다는 걸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전작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감상이 가능하다. 포스터와는 달리 미친놈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는 희망없는 세상. 샤를리즈 테론과 니콜라스 홀트에 대한 재발견을 할 수 있었던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였다.

  • 세계관

STILLCUT

말 그대로 시궁창. 바야흐로 핵전쟁이 발발하여 떡실신에 이른 22세기를 배경으로 한다. 모든 것이 먼지와 모래로 되어버린 세상에서 물과 음식 그리고 기름은 살아남기 위해서 가져야하는 필수품이자 힘을 위한 필수품으로 자리잡는다. (사실 세기말이 아닌 현 세계에서도 저 논리는 통용된다. 단지 정도의 차이겠지만…)

 나는 제3차 세계대전에 어떤 무기가 사용 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제4차 세계대전에선 몽둥이와 돌멩이로 싸우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한 아인슈타인의 말이 무색하게도 그들은 여러 도구들로 싸움을 이어간다.

핵전쟁 이후의 세계를 다룬 작품은 매드맥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핵폭탄의 개발과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잠수함 발사형(SLBM) 등등의 개발로 인해 핵전쟁에 의한 인류와 세계의 멸망은 더이상 허무맹랑한 공상소설만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의 가능성으로 오래전부터 다가왔다. 그러자 사람들의 머리속에서는 ‘만약 핵전쟁이 발발한다면…’에 대한 상상이 자리잡았고 이는 글과 이미지, 영상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그 중에서도 파급력과 몰입도가 가장 높은 작품은 단연 ‘게임’이었다. 그 게임들중에서도 가장 수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은 단연 ‘폴아웃’ 시리즈일것 같다. (그냥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인듯)

폴아웃 이미지 2

게임 폴아웃3 중에서

매드맥스를 처음 봤을 때에 바로 ‘폴아웃’이 떠올랐다. 일단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들이 ‘총질’을 한다는 점과 핵전쟁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많이 닮아있다.

War. War never changes. – 폴아웃

매드맥스에서도, 폴아웃에서도… 핵전쟁이 끝난 이후마저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이어가지만 매드 맥스와 폴아웃은 다른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인물’이다.

  • Max, My name is 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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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하디가 분한 맥스는 마초적이며 과묵하다. 정신나간 세상에서 그는 트라우마와 싸우고 자신을 해하려는 적들과 싸우며 끊임없이 자신을 엿먹이는 세상과도 싸운다. 그 누구보다도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쉽사리 다른 사람들을 믿지도 않는다. 기본적으로 남들보다 훨씬 강하다보니 어느 정도는 헤쳐나가지만 결국 곤경에 처하고 만다. 그러다가 만난 여자 캐릭터와 협력하고 신뢰관계를 쌓아가며 자신의 적들을 가차없이 부순다. 한 마디로 고독한 츤데레 먼치킨 마초?

익숙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바로 떠오로는 인물들. ‘신시티’의 남자들과 맥스는 참으로 닮아있다.

신시티 포스터

처음에는 하티건(브루스 윌리스)이 바로 떠올랐지만 맥스는 그보다 더 냉철한 캐릭터이다. 마브(미키 루크)? 드와이트(클라이브 오웬)? 맥스를 특정 캐릭터에 대입할 수는 없지만, 신시티 캐릭터의 공통분모가 분명 맥스에 존재하는것 같다. 서사구조도 그렇고 성격과 강한 정도, 외모 등등에서 그랬다. (프랭크 밀러, 조지 밀러… 밀러? 우연일까!?)

  • 인간이 살아남은 세상에선 인간이 인간을 수단화한다. 

WE ARE NOT THINGS !!!(우린 물건이 아니야!!! )

매드 맥스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인간의 수단화’였다. 강자로 대변되는 임모탄은 자신과 자신의 군사들 외에는 모든 인간들을 자신만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워보이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위한 군사로써, 여성들은 출산과 모유를 만들기위한 수단으로써, 하층민들은 물을 이용해 자신의 신도들로써 이용한다. 심지어 주인공을 포함한 포로들은 워보이들의 피주머니로 쓰인다. (심지어 사람을 먹는 우두머리도 있다.) 힘이 있는 자들이 물과 식량, 석유, 무기까지도 독점하는 구조에서 임모탄은 ‘신’과 같은 위치로 군림한다. 아니니 다를까. 임모탄은 종교마저 수단화한다. 워보이들에게 자신의 뜻을 이루어주면 자신이 직접 천국으로 보내주겠다며 전장으로 내몰고 그마저도 신통치 않으면 가차없이 버린다. 종교와 메시아의 이름만 빌려온 것이다. ‘수단화’의 극단화가 시타델을 군림하게 하는 임모탄의 힘이다.

여담으로 여기서 천국으로 보내준다는건 결국 자기가 직접 죽여주겠다는 뜻인데, 워보이들에게 결국 영예로운 죽음만이 이 지옥같은 세상에서 빠져나오게 해줄 구원이었던 것은 핵전쟁이후의워보이들이 그동안 어떻게 자라오고 살아왔는지를 말해주는 설정이다. (영화에서 어린 워보이들도 톱니바퀴로 쓰이는 걸 보면 더더욱 그렇다.)

Wh- What a Lovely Day !!1 (히힣 히히힉 천국가쟈!!!!!)

  • 스플렌디드(Splendid) – 정말 좋은[멋진], 훌륭한, 아주 인상적인[아름다운]

“그가 말하길, 총알은 죽음의 씨앗이라 했다. 심을 때마다 사람이 죽는다고.” 스플렌디드(로지 헌팅턴 휘틀리)

스플렌디드의 죽음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진다. 퓨리오사가 탈출시킨 5명의 여자들의 리더격이자 임모탄이 가장 아끼는 임신중인 여자였다. 그 피도 눈물도 없는 임모탄이 총을 거두고 차를 뒤집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녀는 죽음을 통해 나머지 4명의 여자들에게 충격과 함께 주체성을 부여한다. 그녀의 죽음을 전후로 해서 여자들이 역할을 자발적으로 요구하고 망을 보거나 무기를 챙기는 등의 변화가 일어난다. 동시에 임모탄을 격분하게 해서 추격전의 긴박함과 치열함을 더해준다. 여러모로 석유와 같은 인물이다. 맥스 일행이 녹색땅을 향해서 달려갈 수 있는 동력을 주고, 불과 같은 임모탄 연맹이 더 불타올라 맥스 일행의 뒤를 바짝 쫓게 한다.

  • 녹색 땅, 머리속에서만 존재하는 유토피아.

녹색 땅. 희망이 있는 곳, 퓨리오사가 태어났던 곳. 탈출의 목적이었던 녹색 땅이 없다는 사실을 안 뒤, 퓨리오사는 오열하고 여자들은 절망한다. 눈 앞에 보이는 희망을 향해 도망치던 이들의 발치에 지금까지 왔었던 길보다 더 먼 사막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신기루일 뿐이었던 희망이 사라진 순간. 그들은 헛된 희망을 만들어 믿고 달려가기로 한다. 녹색 땅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채로 그저 달린다. 그저 ‘잘 될꺼야… 잘 될꺼야…’라며 현실을 외면한 채로 반강제적 힐링 혹은 자발적 희망고문을 하는 이들에게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인물들을 어리석다고 욕할 일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는 것은 이토록 힘든 일인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과정임은 자명하다.

“뭐하는 거야?”

“기도하는 거야.”

“누구한테?”

“누구든 들어주는 이에게…”

맥스는 여기에서 모든 인물들중에서 유일하게 ‘정신줄’을 잡는다. 따로 떨어져 그들은 그들대로 두고 자신은 자신대로 떠나갈 수 있었지만 더이상 외면하지 않고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자신들을 쫓아오는 잔인한 세상. 그들에게서 벗어나 살아가기 위해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가. 그들이 자멸하지 않는 이상, 마주할 수밖에 없다. 도피는 또 다른 도피를 계속해서 요구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날씨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부정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크게 없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해주는 맥스. 미쳐버린 세상에서 정신줄을 잡고 두려움없이 방향을 바꾸는 것을 통해 그들은 관객들에게 핵심 메세지를 던져준다.

‘정신차려, 현실은 실전이야 이 XX들아!!’

  • 희망없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하여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 The First History Man

영화 속 그들은 어디로 가야했던가. 시타델 밖? 초록색 땅? 소금 사막 너머? 그 모든 곳도 아닌 바로 시타델이었다. 물과 석유 자체가 공포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공포인 것이다. 희망을 찾고자 한다면 희망이 있는 곳을 향해 가야 하는 것이지 희망이 있을 것 같은 곳을 가야하는 것이 아니다. 매드 맥스에서 희망은 계층이 무너지고 평등이 찾아올 때에 비로소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메세지를 멋지게 형상화한다. 크레인이 올라갈 때에 남녀노소의 구분없이 끌어올려 다같이 올라가고 물이 모두에게 흘러드는 장면. 단지 지도자의 자리만 바뀌었을 뿐인데 셀 수 없이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제 시타델은 총알(죽음의 씨앗)을 위한 땅이 아니라 씨앗(생명의 씨앗)들이 싹을 틔울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절망과 희망은 한 동전에 붙어있는 양면임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희망없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하여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스크린에 투사되는 문장이다. 마지막 장면이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가야할 곳은 바로 이 곳. 우리가 매일 숨쉬고 마주치는 바로 이 곳이다. 중요한 건 ‘어디’보다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의 질문에 대한 답일지도 모르겠다.

P.S 그 와중에 기타, 드럼 치는 이들은 영화의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P.S 전략의 핵심은 ‘회군’이었다는 점에서 영화의 재미가 배가되었다.

       이런 식으로 자매품 ‘위화도 회군’을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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