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7.24

(출처 : 뉴스타파 )

그 날의 사고를 접한 건 아침밥을 먹으면서 본 TV를 통해서였다. 속보였다. 커다란 배가 누워있었다. 세월호.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가 불현 듯 떠올랐지만 잘 해결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배는 점점 더 기울었고 신고 2시간 20분만에 속절없이 가라앉았다. 언론들은 각자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셀 수 없이 쏟아냈고 난 그 정보들에 매몰되어갔다. 그리고 18일 오전 11시 50분, 세월호의 뱃머리마저 완전히 잠겨버렸다. 이후 생존자 발견소식은 없었다. 사실상 구조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 뒤로 일어난 일들은 살아있는 이들간의 싸움이었다. 유가족들은 청와대로 행진하려다가 저지당했고, 선장에 대한 비난과 다이빙벨, 청해진 해운, 언딘과 해경 그리고 끊이지 않는 추모 집회와 충돌들… 누가 누구의 책임인지를 묻고 피하고 유보하는 동안 실종자 가족에서 유가족으로 이름표를 바꿔서 다는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출처 : 오마이뉴스)

여름이 찾아오는 동안 무슨 일들이 일어났던가. 유가족들에게, 추모를 위해서 모이는 이들이 갑자기 공격을 받기 시작하지 않았던가. 하나같이 믿기지 않는 비극에 슬퍼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다른 관점들을 만들고 자신보다 아는 정도가 적은 이들을 무식한 이들 취급하면서 찍어누르는 과정들을 반복했다. 세월호 참사는 하나의 ‘소재’가 되었고 공감과 위로는 적대적인 말들로 바뀌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싸우기 시작해야 했고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들은 더한 무관심을 겪었다. 어느새 세월호 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라치면, ‘어두운 이야기는 그만하자.’, ‘결국 교통사고인데 뭐가 문제냐.’, ‘국가가 사고를 낸 것도 아닌데 뭘?’ 등의 대답들만이 돌아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유가족, 그들을 만나고 그 아픔을 그들만이 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상실을 겪는 이들에 대한 당연한 예의이자 측은지심이라고, 진실은 규명되어야 하고 이는 국가의 당연한 책임이고 이를 맡아야 한다고 믿었다. 같은 생각을 가졌던 친구들과 나는 사고 후 100일이 지났던 7월 24일에 무작정 시청으로 향했다.

(세월호 100일 서울 광장. 출처 : 국민TV)

사람들이 모이고 있는 중이었고 폴리스 라인은 이미 설치가 완료되어 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들고 있던 깃발들이 하늘에, 정부의 무능을 규탄하는 종이들은 땅 위에 흐드러져 있었다. 그 사이를 오가며 모금을 하는 단원고 학생들과 동년배로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 시청 광장의 군중들 가장 깊숙한 곳에 유가족들이 계셨다. 모니터에서만 보던 이들의 슬픔이 눈 앞에, 숨결이 닿는 곳에 있었다. 공기보다도 가벼운 단어들 위에서 위태롭게 매달려있던 사람들… 바닷물보다도 쓰고 짠 슬픔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도움을 목놓아 부르짖던 목소리에는 지옥이 있었다. 우리는 일어나서 그 슬픔들과 광화문으로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했다. ‘나‘라는 개인 하나가 참여했다는 것 뿐인데 큰 변화를 느꼈다. 목소리는 점점 커져갔고 보폭은 더 넓어졌다.

하지만 중간 즈음에 다다랐을 때, 나는 혼자 근처 지하철역으로 빠졌다. 가족들에게 저녁식사시간에 맞춰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었기 때문이다. 두 발은 역 방향을 향했지만 두 세걸음마다 뒤를 돌아봤다. 그러다 인도 쪽을 걷던 (행진은 차도를 따라 이루어졌다.) 아저씨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내 아버지 뻘은 되어보였다.

“야 이 새끼들아, 그만 좀 해라. 지겹지도 않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열심히 공부나 할 것이지 말이야.”

오른손에 들고 있던 테이크아웃 커피를 쏟을 정도로 격한 삿대질까지 섞으며 이런 말들을 계속했다. 이윽고 행렬에 있던 3,40대로 보이는 여성분이 맞받아쳤다.

“그만 둘 수 없어요!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다고요!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 아저씨는 목을 쭉 뻗으며 대답했다.

“그래, 너네 아주 잘났다. 이따구로 불편하게 하면서 잘 되나 두고 보자 X발”

그리고 그 아저씨는 오른쪽으로 꺾어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잠깐의 웅성거림이 끝나고서 행렬은 행렬대로 행진을 계속했고 다른 사람들도 다시 이어폰을 꽂고서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모두가 멀어지는 동안, 나는 그 곳에서 잠깐 멈춰섰다. 구호가 몇 번 거리를 따라 울려퍼지고 이윽고 행렬의 끄트머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뒤돌아 다시 행렬에 합류했다. 그렇게 어둠이 내릴 때까지 계속 걸었다.

 광화문에는 인도를 따라서 경찰버스들이 머리와 꼬리를 붙여 벽을 만들어 놓았다. 인도에서는 광장을 전혀 볼 수 없을 정도로 빽빽했다. 종종 지나가는 마을버스에서는 조롱이 흘러들어 나왔고 형광색 옷을 입은 경찰들과 시위대의 거리는 더 좁혀졌다. 유가족들의 한숨에 더욱 굵어진 빗방울이  팔뚝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보다 더 앞서서 가던 행렬에서 경찰과의 말다툼이 일어났다.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런 일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곧장 경찰을 향해 달려갔다. 몇몇 사람들도 둘을 향했다. 그 움직임을 본 경찰은 바로 물러났고 우리를 경계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나와 비슷한 나이대일 것 같은 청년이었다. 입은 다물고 있었지만 크게 뜬 눈에는 공포가 느껴졌다. 나는 그 때 그들에게 무엇이었단 말인가? 시위대는 오히려 그들에게는 괴물이었고 적이었을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자정이 넘어 돌아왔지만 지친 몸은 복잡한 머리 덕에 잠들지 못했다.

나에게 세월호는 2014년 7월 24일,

이 때를 전후로 그 의미가 바뀌었다.

(출처 : 연합뉴스)

시위는 끝나도 유가족의 시간은 여전히 4월 16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음, 다다음 시위가 계속되어도 변한 것은 없어 보였다. 나에게는 한 표의 권리가 있고 의견을 표명할 힘도 있었고 시위를 하고 그들의 통곡에 같이 울어줄 몸이 있었지만 그 뿐이었던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감정이지만 나의 일은 아닌 듯, 나의 할 일은 세월호 참사 전부터 마련되어 있던 일상뿐이었던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여기까지인건가?‘ 하는 물음은 답없이 말꼬리를 이어갔다. 세월호는 여전히 바다에 가라앉은 채로 새해가 밝았고 한 달 그리고 두 달….

(출처 : 미디어몽구)

2015년 4월 2일. 유가족들은 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는 노란 천위로 자신의 머리카락과 눈물을 떨구었다. 유가족들도, 유가족의 머리를 밀던 이들도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이들도 울음을 토했다. 그 울음을 토하던 이들을 유가족들이 안아주었다. 난 그 장면을 처음 사고를 접했던 때처럼 먼 곳에서 그저 목격했다. 생각없이 웃다가도 이러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연거푸 숙였다. 땅이 보이고 발 끝이 보일 때까지 숙였다. 그리고 그 날 꿈에서 난 광화문을 향해 다시 걸었다. 안개가 가득해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 속에서 비닐을 덮고 있던 머리를 민 유가족분이 이슬을 털고 일어나 내게 말했다.

“오랫만이에요,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출처 : 오마이뉴스)

그 한 줄이 얼마나 무거웠던지 질문을 들은 난 다급히 잠에서 깼다. 대답할 수 없었다. 답할 말이 없었고 답할 염치가 없었다. 그 동안 난 대체 어디에 있었나. 무얼 하고 있었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있었나. 무력함을 핑계로 놓은 두 손은 얼마나 가벼웠던가. 난 그들을 얼마나 잊고 있었는가. 아, 이 얼마나 비겁한 인간이란 말인가…

(출처 : 금강일보)

그러던 와중 세월호 1주기 전날 밤, 카이스트에서 ‘세월호를 읽다.‘ 라는 행사가 열렸다. 저 곳에 가면 나와 같은 이들이 있는 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비겁하지만 위로와 힘을 얻고자 했다. 사고가 일어났던 1년 전부터 삭발한 유가족까지 이어진 사진들과 그들의 입에서 나오고 귀로 들어온 수많은 글들을 천천히 행사주최자들이 읽어갔다. 사람들은 조용히 들었다. 울음이 곳곳에서 울려퍼졌다. 우리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틀린 것인지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인지 모른 상태로 헤메는 동안 1년이 지나버린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왔기에 비극이고 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을 그렇게 얻었다. 그제서야 나는 분향소에 갈 용기를 얻었고 추모를 다시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눈에 한 명 한 명 새겨 넣었다.

(출처 : 연합뉴스)

죽은 이들은 말 없이 산 사람들에게 슬픔과 상실을 준다. 그 아픔을 극복하게 해주는 건 죽은 이들이 아니라 또 다른 산 사람들이다. 눈물과 그들을 보듬어줄 두 손과 품이 있고 체온이 식지 않은 건 우리들이다. 산 사람들의 눈물은 죽음과 삶을 동시에 위로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건 상실을 겪은 이들과 같이 사는 이들, 우리들만이 할 수 있다. 그 누구도 아닌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잊지 않고서 함께 하고 계속해 나갈 때 비로소 희망이 싹 틀수 있다고 나는 믿기로 했다. 잊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들의 조롱받는 슬픔이 다할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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